남북 이산가족문제 발생과 대책
김형석 대진대교수
(前 통일부차관)

Ⅰ. 들어가는 말
2018년 요란했던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 평화시대가 현실화되는가 하는 기대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뒤덮고 한반도 정세도 대화와 협력의 기운대신 갈등과 긴장된 상황으로 변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도 고령의 이산가족일 것이다. 멀지도 않은 북녘땅에 가족 친지를 두고 70여년이 넘도록 만나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할 것을 생각하면 한이 맺히는데 현재의 답답한 한반도 정세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및 민간차원에서 다양한 해결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산가족 범주와 이산가족에 대한 남북간 인식차이, 그리고 북한당국의 정치적 접근 등으로 인해 21회의 2박3일 대면상봉행사와 7차례의 화상상봉 실시 등 매우 제한적인 성과만 이루어졌다.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 시급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산 2,3세대와 탈북민 등을 감안할 때 이산가족 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Ⅱ. 이산가족문제 발생 원인 및 이산가족 유형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이산가족은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현재 군사분계선 이남지역과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8촌이내의 친척·인척 및 배우자 또는 배우자이었던 자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21세기 국제화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전쟁에 의한 이산가족 보다는 정치·경제적 이유나 환경·문화적 요인 등에 의해 이산가족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여러 가지 분쟁으로 난민이 발생하고 이들 난민이 이산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이산가족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치·경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생활하고 있으며, 통신·교통 등 물리적 수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교류가 제한되는 사람들’이라고 달리 정의할 수 있다.
남북 이산가족 유형에는 해방이후 6.25 전쟁 기간 중 월남자와 월북자· 전쟁시기 미귀환 국군포로 및 인민군 포로, 그리고 전쟁이후 납북자· 탈북민이 있다. 이들의 후손인 2·3세대도 광의 이산가족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산가족을 고향을 떠나 상대지역으로 이동한 경우(월남자, 월북자)와 상대지역에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실향사민, 북한출신 반공포로, 국군포로, 북파공작원, 납북자)로 구분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해 증가한 탈북민들은 과거 정치적 귀순자와는 달리 주로 경제적 어려움에 의해 가족을 두고 고향을 떠나온 북한주민들이다. 전쟁이나 남북 분단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한 이산가족과는 달리 경제적 어려움 해소 등 개인적 요인이 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신(新) 이산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Ⅲ. 북한 이산가족 인식과 남북 협상 결과
1. 북한 이산가족 인식
6.25전쟁중 ‘월남인’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적대적인 월남인’과 ‘비적대적인 월남인’으로 구분되어 진다. ‘적대적인 월남인’은 ‘지주, 자본가, 반동 관료배들, 그리고 일제 때 벼슬을 해먹던 자들로 나쁜 짓을 하고 도망간 적대계급이며 원쑤’라고 인식한다. ‘비적대적인 월남인’은 ‘미국 놈들이 원자탄을 쏜다는 바람에 무서워서 나갔거나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나오면 다 죽인다는 허위선전에 속아 남으로 나간 사람’으로 인식한다. ‘적대적 월남인’에 대해서는 북한 형법상 반혁명 및 민족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잔혹하게 다루면서, 유가족은 반체제 범죄를 저지를 경우 공개재판 등 무자비한 처형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비적대적인 월남인’에 대해서는 1952년 1월 북한이 정전회담에서 유엔군의 위협하에 강제로 납치된 사람 인 ‘실향사민’(displaced civilians)이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으로의 송환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월북인’에 대해 북한은 ‘의거 입북자’라고 칭하면서 선전적 차원에서 이용해 왔다. 북한은 전쟁기간중 납북자에 대해 남한정권을 혐오하여 북한지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하면서 귀환을 요청한 사람이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치인 등 납북 의혹이 있는 월북인사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하자가 없다면 사후에 ‘애국열사릉’에 안치하는 등 후대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기간 중 의용군으로 월북한 사람은 대략 3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들은 제대 후 우선적으로 직장과 학교를 배정받는 등 북한내에서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국군으로 의거 입북한 사람들도 소수였지만 풍성한 정책적 배려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와 이념에 대한 동조 여부에 따라 제한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남북한 협상 결과
1971년 8월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북한적십자회에 정식으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특별성명을 발표한 이후 남북한 간에는 주로 적십자 채널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어왔다.
이산가족 문제에 있어 남북간에 가장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인 사안은 이산가족 범주였다. 1985년 8월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남북이 이산가족 범주에 대한 구체 합의 없이 이산가족 상봉 범위에 있어 직계 존·비속은 헤어질 당시의 가족과 그 이후 출생한 가족을 포함하고, 친척의 경우에는 방계는 8촌, 처·외가는 4촌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우리측은 이산가족 범주를 확대하겠다는 확고한 입장하에 북한이 납북자·국군포로 등도 이산가족 교류의 대상으로 수용하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갔다. 이에 대해 북한은 본인 의사에 반해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국군포로의 경우 정전협정시 포로교환으로 해결되었고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후에도 적십자회담과 장관급회담에서 지속적으로 북한에 이산가족 범주 확대문제를 제기하고 설득한 결과 2007년 4월에 개최된 제8차 적십자회담에서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이산가족문제에 포함시켜 협의․해결’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남북의 이산가족 범주에 대한 인식 차이는 많이 해소된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남북간 이견이 컸던 부분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 문제였다. 우리는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 확인을 전제로 소식 교환 및 상봉, 고향 방문, 가족 재결합 등의 방안을 북한에 제의하면서 북한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선 북한내 이산가족 교류에 소요되는 경비 지원과 금강산 상설면회소 건설과 화상상봉센터 설치를 지원하였다. 아울러 ‘프라이카우프’를 원용해서 북한이 원하는 식량 등을 지원하면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적극적 입장에 대해 북한은 남북 협상 초기부터 일관되게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하면서 100가족 내외의 소규모 상봉위주 행사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북한은 남북한 이산가족생활수준이 비교를 의식해서인지 상봉장소를 초기에는 서울과 평양으로 하다가 2002년 4월에 있었던 제4차 상봉행사부터는 금강산으로 한정하였다.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시대를 선언하였던 2018년에도 기대와 다르게 단 한차례의 금강산 대면 상봉외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었다.
북한은 이산가족문제를 대북지원 등을 확보하는 협상 카드이자 남북관계 국면 전환 및 상황 관리차원에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앞으로도 북한은 이러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Ⅳ. 이산가족 문제 특성
이산가족 문제의 특성은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중 고령층의 비율이 높고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12월 기준 생존자 49,452명 중 70대 이상이85.4%를 차지하고 있다. 평균 기대수명으로 보아 생존자들이 상봉하기 위해서는 상봉 인원을 매년 수천명 단위로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이 기다려주는 문제가 아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가족과의 이별 등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매우 비인간적인 정서적 고통이다. 전쟁 중에도 전쟁포로 및 부상자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이루어지듯이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주의 특성을 감안할 때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다음으로 이산가족문제의 인권적 특성이다. 가족과의 자유로운 상봉과 결합은 기본적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일한 내용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도 반영되어 있다.이산가족들에게 인권으로서 보장되는 권리는 가족의 형성과 유지, 면접 교섭, 가족제도의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산가족의 경우 분단으로 수십년 동안 가족상봉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등 가족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이산가족에 대한 인권적 권리로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가족의 자유로운 형성과 유지가 국가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적극적 측면에서는 제 3자에 의한 방해에 대한 법적·경제적 지원과 보호를 국가에게 요구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산가족 문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성격 변화라는 특성이다. 이산 1세대의 사망과 2·3세대 및 신 이산가족인 탈북민의 등장과 함께 이산가족 교류가 서로 다른 문화의 교류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남북한간 이산가족 상봉 및 교류를 통해 남북한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상호 전파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북한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통합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산가족 교류가 남북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는 과거 지향적인 주제를 넘어 남북 통합과 궁극적인 통일을 가져오는 미래지향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
Ⅴ. 이산가족문제 재정립 및 추진방안
1. 이산가족문제 재정립
이산가족의 고령화와 인도주의적 특성만을 강조할 경우, 이산가족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산가족‘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이산가족 문제의 인권적 특성과 남북 사회 통합적 특성을 고려할 경우에는 이산가족 문제가 우리들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 사회공동체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온다. 그리고 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산가족 문제의 남북 사회통합적 특성은 우리가 잘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인도주의적 특성, 인권적 특성, 남북 사회 통합적 특성을 균형있게 고려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되, 당면해서는 고령 이산가족들의 여생을 감안해서 인도주의적 특성에 입각한 접근에 보다 많은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2. 추진방안
1) 인도주의적 측면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북한의 태도를 감안해서 정치적 문제를 협의하는데 한계가 있는 적십자 회담대신 당국간 회담 틀을 통해서 보다 직접적이면서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활용해서 북한과의 협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 보자는 것이다.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전면적 생사주소 확인, 상봉 정례화, 서신교환 등 근본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면서, 상설 면회소를 지금의 금강산만이 아닌 접근도가 높은 지역, 예를 들어 개성이나 문산 등에도 지정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안과 함께 고향 방문과 가족 결합 등 북한이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방안도 현실화될 수 있도록 비공개적으로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적극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 제재 틀 예외 조치로 에너지 및 인프라 건설 지원 등 통 큰 경제적 지원을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연계하는 곳이다.
당국차원의 해결 노력과 함께 민간차원에서도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민간 교류주선단체 역량을 강화함과 더불어 교류 희망자들이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3국 상봉 등에 소요되는 실제 경비는 전액 보전하는 수준으로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도입해 볼 만하다.
당국차원이나 민간차원의 교류와는 별개로 고령 이산가족의 유전자 검체 보관 및 영상 편지 제작사업 등을 통해 이산가족의 사후 친자 확인 및 교류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 정보화 시대에 가능해진 가상현실(VR) 기법을 활용해서 북한지역 고향을 입체적으로 영상화하고 이산가족들이 영상으로 나마 고향을 방문하여 이산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기회 제공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인권적 측면
이산가족은 천부적 인권인 ‘가족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다.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장점은 이산가족이 아닌 국내 및 국제사회의 제3자가 적극 동조하고 나선다는데 있다.
북한인권 문제는 90년대 중반 탈북자들에 의해 열악한 북한인권 실상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등 국제적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도 인권적 차원에서 국제사회가 그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국내 인권단체 중심으로 유엔무대 현장에서 이산가족의 인권 침해적 특성을 강조하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북한이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문제를 인권차원에서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우리 입장에만 부합되게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북한내 생활이 어려워 자유의사에 의해 국내에 입국한 반면, 우리가 제기하는 실향민, 납북자, 국군포로 등은 북한당국의 강압적 조치로 인한 강제적 이산가족으로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우리가 이러한 차이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해 나간다면 국제무대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있어 북한의 탈북민 문제 제기로 수세에 몰리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3) 남북 사회통합적 측면
남북 사회통합적 차원에서는 신 이산가족인 탈북민의 적극적인 역할과 이들에 대한 지원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3만명 이상의 탈북민들 대부분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내 가족 및 친인척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및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민들은 국내 탈북민보다 더 자유롭게 북한내 지인들과 소통할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탈북민들의 송금에 의해 북한내 가족들이 장마당에서 장사를 해서 돈도 벌고 생활도 풍족하게 됨에 따라 주위에서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탈북민들의 북한내 지인들과의 소통과 교류는 북한 내부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북한이 우리사회와 통합되는 과정에서 적절하게 기여할 것이다. 탈북민들의 재입북이 문제가 되고 있으나, 재입북한 이들이 기자회견에서 남한내 아파트생활, 병원치료 등을 거론할 때 북한주민들은 오히려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탈북민들의 역할이 남북 사회통합이라는 미래지향적 측면에서 중요한 만큼, 성공한 탈북민 사례를 많이 만들고 북한 주민들이 이러한 사례를 직 간접적으로 알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4) 정주영식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해결 측면
1998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소 1천1마리를 대동한 방북과 금강산 관광사업 실현을 계기로 고향인 강원도 통천을 방문하고 일가친족과 상봉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정주영 회장을 자본가로 배척하지 않고 공화국 발전에 기여하는 인물로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감안해서 이산가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남북 경협이나 인도적 협력 등을 계기로 고향을 방문하고 친지 상봉 등을 실현하는 접근도 해 봄직하다.
북한 전역에 경제개발구를 지정해서 외자 유치를 도모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기대를 활용해서 이산가족들은 고향지역에 대한 향토사업 차원의 경제협력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간단체에서 하는 북한의 시 군 인민병원 현대화 사업이나 북한 지역에 대한 의료 지원 등에 이산가족들이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불교 등 종교계에서 하는 북한지역내 납골당 사업 참여를 통해‘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면 좋겠다’는 돌아가신 이산가족분들의 소망을 실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Ⅵ. 맺음말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서의 감동적인 장면이다. 10대의 신부가 북으로 떠난 지아비를 그리워 검은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기다렸건만, 정작 지아비는 북에서 결혼하고 자녀까지 두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질투하고 힐난한다. 하지만 북에서 고생한 게 역력한 지아비의 투박한 손을 잡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 우리 모두의 가슴은 먹먹함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적 고통은 남북한 간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안에 앞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이산가족 상봉 희망자 중 사망자가 생존자보다 많은 안타까운 상황을 고려할 때 남북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은 더욱 더 절실하다 하겠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문제라 하면 실향민 중심의 그리고 인도주의적 특성이 중시되다보니 마치 ‘그들만의 문제’이고 고령의 이산가족이 사망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로 인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 이산가족 등 이산가족의 범주가 확대되고 이산가족의 특성에 인권적 특성과 남북 사회통합적 특성이 부가됨으로써, 이산가족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가 되고 ‘앞으로도 계속되는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
‘84년생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은 현재에도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관계 관리용으로 활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이 호응해 나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한중관계처럼 왕래와 거주 이전이 자유로운 수준으로 발전시켜 남북교류협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문제가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방을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북한 선택이 현실화되도록 우리도 통일을 이념이 아닌 실용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정치이념의 ‘통일 1.0시대’에서 실용과 현실의 ‘통일 2.0시대’로의 전환이다.
북한의 경제강국 희망에 따른 개방 선택과 우리의 실용적 접근이 어우러지면 지금의 교착된 남북관계가 현재의 한중관계 처럼 변화할 것이다. 변화된 남북관계 속에서 이산가족 분들이 고향을 관광하러 가고 고향을 돕기 위한 향토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향 친지들과 상봉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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