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해가 바뀌어 분단된 지 68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을 맞게 되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불안정한 분단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통일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2012년에 한반도 문제 관련당사국들의 리더십이 모두 교체됨으로써 냉전 종식 후 20여년만에 통일의 계기를 다시 살려나갈 기회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러한 기대와 달리 올해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싸고 상당히 불안하고 긴장된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우려는 지난해 12월 12일의 북한 미사일 발사와 그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 제2087호 채택(2013. 1. 23)에서 비롯된다. 특히 북한은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제2087호)에 반발해 외무성, 국방위원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불가능” 및 “미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해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북한의 의도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백지화, 전면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9.19 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다”고 전제하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한다”는 부분에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백지화 기조는 20년전 북한의 NPT탈퇴로 시작하여 2003년 5월 12일 공동선언의 백지화로 이어진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김정은 정권의 도발명분 쌓기는 제1, 2차 핵실험 때처럼 ‘미사일 발사→국제 제재→반발 핵실험’ 틀에 따른 제3차 핵실험 강행 위협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심각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강행 가능성은 이미 지난해 4월 장거리로켓발사 실패 이후 제기되었던 것으로서, 출범 초기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지난해 5월 6일 ‘자위적 핵 억지력 강화’를 주장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번에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은 2012년 12월 12일 북한의 로켓발사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하고 기존 결의(1718호 및 1874호)를 위반한 것으로 규탄하고(condemn), 북한에 대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폐기 및 추가 탄도미사일 발사‧핵실험 또는 추가도발 금지 요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추가 도발 시 안보리의 중대한 조치(significant action)가 취해질 것이라는 ‘자동개입(trigger)’ 조항을 결의하는 경고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이번 결의안에는 제재회피를 위해 대량의 현금(bulk cash)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와 함께 북한의 무기개발에 전용이 가능한 모든 품목에 대해 유엔회원국들이 수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전면적(catch-all) 제재가 포함되었다.

 

이상의 대북제재 결의에 대해 중국정부는 지난해 12월 로켓발사 당시 “북한이 우주에 대한 평화적인 이용권리는 있지만 로켓 등 발사는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이라고 강조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안보리 2087호 결의는 관련국들이 협상을 거듭해 얻은 결론으로 전체적으로 (내용이) 신중하고 적절하며, 균형이 잡히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은 국방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세계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큰 나라들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미국의 전횡과 강권에 눌려 지켜야 할 초보적 원칙도 서슴없이 저버리고 있다”고 중국을 지목하여 반박하면서 미국을 겨냥한 핵실험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위협에 대해서도 관영매체를 통해 이례적으로 ‘원조축소’를 공식 거론하면서 북한에 대해 결과를 생각하면서 신중한 행동을 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직후인 2009년 7월 당시 후진타오 주석이 주재한 외사공작영도소조에서 정해진 것으로서 한반도 전쟁 방지와 북한정권의 안정을 비핵화보다 중시한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문제와 북핵문제의 분리’라는 대북정책이 북한의 군사모험주의를 부추겨 온 측면도 있다. 문제는 중국의 새 지도부가 비핵화를 우선순위에 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점에 있다. 바로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북한은 최대한 이용해 왔고 지금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북한에 식량‧원유를 공급하는 중국과의 일시적 마찰을 각오하면서까지 이 시점에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여기에는 체제안정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와 미‧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긴장국면 조성이라는 대내적‧대외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도 2009년 4월과 5월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가 대외 긴장상황을 유발시켜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흔들리는 북한체제를 결속하고 권력재편 및 후계구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계산된 모험이었음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것은 선군사상을 끝까지 고수할 것과 함께 핵 및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과 보유를 김정은에게 당부한 김정일의 ‘10‧8 유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12년 김정은 정권이 공식출범한 이후에도 ‘2.29 북미 합의’를 파기하면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사실과 개정된 헌법전문에 핵무기 보유국가임을 명시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착이 점증되고 있으며, 핵미사일만이 체제수호와 외부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인식하는 북한의 입장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북한이기에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의 핵군축협상 차원에서만 한반도 비핵화를 다룰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교섭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1992년 당시 남북의 지도자와 당국이 민족생존의 길을 확인한 약속과 결단이었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의미와 정신을 되살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틀로 복귀한다면 오히려 ‘비핵화’가 평화협정 체결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편, 대외적 측면에서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유훈’ 에 따라 대중국 의존도 심화의 위험성 상쇄를 위해서 그리고 최근 긴밀해지는 한중관계에 대한 견제로서 미국과 한국을 한반도상의 게임 판에 끌어들이고자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문제는 북한이 진정한 핵 포기 의사를 보이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와의 정상적 교류는 물론 북한경제와 민생의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거부하며 체제수호논리 및 핵무기 개발이라는 군사모험주의에 집착한 북한은 냉전 이후 20여년간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적 선택을 지속함으로써 결국 남북간의 극심한 불균형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우선 냉전 종식 이후의 전개과정에서 북한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을 하나의 시장과 공존의 흐름 속으로 합류하는 계기로 삼기를 거부하고 1993년 NPT를 탈퇴함으로써 소중한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 뒤에도 북한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및 ‘북미 공동코뮈니케’ 채택 이후 미국과의 관계개선 기회를 상실하였고,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초기 ‘9.19 공동성명’에 기초해 시도했던 ‘주먹 펴기’(Unclenched Hand) 대북접근을 거부하고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로 맞받아쳐버림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초래하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2.29 북미 합의’를 파기하면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1994년 제네바 핵합의 이후 오랜만에 조성된 분위기를 무산시켜 버렸다.

 

이렇게 볼 때, 그동안의 북한 행태는 대체로 그들의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계산된 선택과 모험에 따른 것이고, 그 선택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집요한 책임전가의 수법에 따른 결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챙긴 뒤에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는 ‘도발-대화’ 패턴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중국이 인정해 주는 범위 내에서 실현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불안정화를 우려하고 있는 중국은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가 한반도 평화안정에 필수요건이라는 입장에서 북한이 경제개방을 통해 ‘도발-대화’의 악순환을 끊고 이를 토대로 한 사회주의국가로서 존속하는 것에 정책적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군사도발로 인해 한‧미‧일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주한미군 주둔을 장기화하며 중국에 영향을 미칠 MD체제에 대한 관심이 제고됨은 물론 역내 불안정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행태가 중국의 안보이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중국의 부상,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한‧일, 중‧일 간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서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온 남북한과 미‧중‧일‧러 네 나라의 리더십이 교체된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이끌어갈 미․중의 국제적 영향력이라는 현실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이상을 조화시킬 묘책을 찾아야 될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의 평화적 변화를 원하고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해 온 북한의 변화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더욱이 앞으로는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하는 북한으로부터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기에 그렇다.

 

분명히 남북관계는 조화를 이루어내기 어려운 관계다. 그동안의 경험과 교훈 속에서 우리는 합리적 타협이 어려운 북한을 전제로 한 남북관계가 복잡하고 불확실한 특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것이 장기적 안목의 접근이 요구되는 전략적 관계임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략적 관계 속에서의 생존을 위해 북한이라는 상대를 하나의 행위자로 대상화하지 말고, 그들 속의 다양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형성과정의 핵심인 ‘신뢰구축’과 ‘균형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실천은 이를 위한 필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변화와 남북한 간 ‘신뢰구축’을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대북접근법이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를 가져오는데 한계가 있고, 대북지원과 북한도발의 딜레마를 말끔히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남북대화와 대북지원에 관계없이 북한의 도발이 되풀이될 수 있고, 대북지원을 최소화해도 중국의 지원으로 인해 대북압박의 실효성이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문제다. 핵 비확산 문제는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가적 위협으로서 국제적인 해법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핵심 쟁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면서 ‘협상을 통한 외교적 타결’을 통해 남북관계가 민족의 안전과 평화에 기여하는 진일보한 단계로 이행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향후 남북관계 발전 및 정책방향 수립을 위해서는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시‧공간적 상황을 고려한 구조와 역사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는 한편, 북한의 국제적 약속이행을 이끌어낼 정도로 상호정당화가 가능한 명분 즉, 국제적 합의 및 남북 간 합의에 기초한 명분과 남북 공동의 이해관계 및 밑으로부터의 미시적 접근에 기초한 실리를 통해 ‘대북 설득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동수(통일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