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사태의 한반도미래 시사
전경만(남북사회통합연구원 이사)
지난 주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가 전격적으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그 직접적 발단은 친러정책을 추진한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정해 친서방 정책을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로 탄핵받아 러시아로 망명한 것을 기화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적 가치가 큰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해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중요한 군사기지가 배치되어 있는 크림반도에 먼저 무력을 추가 배치해서 주민투표로 크림반도를 자치공화국 지위에서 독립시킨 후 그들 대표와 러시아에 합병하기로 합의했고 이를 서명했던 것이다.
기실 러시아계 인구가 절대다수인 크림반도는 1783년 러시아 제국에 병합된 이래 종주국 러시아의 팽창정책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어 왔으며, 흐루쇼프 수상이 우크라이나에 양여한 1954년 이후에도 끊임없는 친러 합병요구 속에 러시아가 1997년부터 조차해 오고 있다.
현재 크림사태는 외견상 정리되는 것 같으나 미국과 EU의 대러 제재 강도와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적 압박 정도에 따라서는 우크라이나 핵심영토 자체가 동서 내분에 빠질 우려도 없지 않다. 동부는 러시아계 민족이, 그리고 서부는 우크라이나계 민족이 각각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크림반도 사태의 처리향방에 따라 서로에 대한 반목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냉전 당시 핵시설까지 배치할 만큼 중시된 소비에트 연방이었지만 탈냉전으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 각각의 변방지역으로서 향후 주권과 영토 문제를 또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크림반도 사태는 이러한 정치군사적 국제역학의 일차적 제물에 불과한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크림반도 사태가 중견국으로서 안보와 통일문제를 이중적으로 안고 있는 한국에게 시사하는 점이 한 둘 아니다.
첫째, 탈냉전 이후 나토와 EU가 추구해오는 동진정책에 러시아가 제동을 걸었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 구소련 위성국가 다수가 탈냉전과 더불어 EU와 나토에 계속 가입하자 국경관리에 긴장해온 러시아가 크림반도 강제합병을 통해 서방의 동진을 공세적으로 꺾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일단 크림반도를 장악한 러시아가 영향력을 추가해 서쪽으로 확장을 도모한다면 서방의 직접적 거부에 필연적으로 직면할 것이다.
둘째, 러시아와 미국 간 새로운 냉전이 파생할 우려가 없지 않다. 2009년 오바마 정부는 대러관계를 재설정(reset)하는 정책을 택했고 양국은 2010년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도 체결하였는데, 2012년 푸틴 대통령이 재취임하면서 양국관계에 불협음이 적잖게 끼어들고 있다. 푸틴이 ‘강한 러시아 부활’ 비전을 크림사태 이후 대미 및 대EU 관계에서 어떻게 그리는가에 따라 냉전 구도가 구체적 윤곽을 보일 것이다.
셋째, 미국의 군사적 위상이 2008년 경제위기에 이어 예산감축 등으로 인한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러 제재조치와 외교적 압박에 치중했을 뿐, 크림반도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으로 대응은 아예 상정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비군사적 요구에 일일이 응할 입장은 아닐 것이며, 점차 국제역학이 문자 그대로 G-제로 형국을 보일 것이다.
넷째, 주민의 정치적 선택의사가 국제법 내지 국제규범상 통용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비록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위법성 논란을 받고 있지만, 크림자치공화국 주민의 96%가 러시아 합병에 찬성해 러시아의 합법적 합병 주장을 받들고 있다. 유엔헌장은 전쟁과 무력침략을 부정하고 있지만, 주민 선택에 대해서는 대체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규범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강대국은 접경하고 있는 약소국과 관련되는 자국의 영토적 이익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양보하지 않으려한다. 오히려 외교, 경제, 군사 등의 우위를 이용해 언제든지 자기 이익을 달성하려고 해 국제 갈등과 분쟁의 소지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강대국에 싸여 있고 실패하고 있는 북한이 반을 점령하고 있는 한반도를 위해 크림반도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먼저, 민족자결주의는 향후 한반도 통일에 대해 국제적으로 지지와 협력을 얻을 최소한의 국제규범이며 국제법철학으로서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 급변 경우 주변국이 개입을 자제하도록 북한 주민의 자유의사가 대한민국에 있음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분명하게 노력을 쏟아야 한다. 둘째, 현실정치에서 군사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해야 한다. 주권, 영토 보장, 또는 합병과 같은 생존적 국익(survival interest)을 위해 군사수단을 외교수단과 함께 동전 양면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적 기회엔 군사력이 즉각 가용하도록 해야 한다. 속도가 승패의 관건이 되는 오늘날, 군사력을 양성하거나 동원해서 대응하는 방식은 부적합하다. 셋째, 정치지도자는 모름지기 안보와 통일문제에 대해 정책결정과 실행을 실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대안 없는 개혁이나 정치적 구호는 국민갈등과 분열만 증폭시키므로 삼가는 것이 요구된다. 국민화합과 소통은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대외정책 실행의 근간이 된다. 넷째,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과 긴장이 깊어지면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6자회담이 과거와 같이 한미일 대 중러북의 대립 구조로 되돌아가 무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우려가 있다. 한국이 비핵화 외교를 선도할 수 있는 방안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치밀하게 모색해야 한다. 다섯째, 한국이 중장기적으로 남북한 신뢰구축과 관계발전을 위해 검토하고 있는 유라시아 협력구상,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과 TSR 연결, 또는 한반도 종단 송유관 건설 등이 자칫 외교적 취약점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크림반도 사태를 계기로 국제정치 현실을 우리는 각별히 새겨 북한 발 각종 안보문제에 대처하면서 북한을 통일대상으로 순치시켜 갈 수 있는 여건조성에 각별한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